세상이 온통 스타트업ㆍ창업 얘기로 가득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지원도 넘쳐난다. 하지만 ‘문송’(문과라서 죄송)에겐 예외다. 지원의 초점이 인공지능(AI)ㆍ휴머노이드ㆍ생명과학과 같은 첨단 기술이거나, 적어도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처럼 새로운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창업에 도움되는 기술에 맞춰져 있어서다. 이공계와 달리, 문송에겐 대기업 취업문도 바늘구멍이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생도 9급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21세기 문송의 평균적 현실이다.
지난 14일 디지털 토크 라이브 ‘국민의 목소리, 정책이 되다’가 열린 서울 동대문구 콘텐츠문화광장.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비(非)기술 창업가’란 표현이 등장했다. ‘도시 콘텐츠 기획 전문기업‘을 표방하는 어반플레이의 홍주석(42) 대표가 청중 속 발언자로 나서 한 말이다. 그는 ”한국에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가지고 창업하는 비기술 창업가들이 많이 있는데, 이분들은 지역에서 성심당 아니면 삼진어묵 같은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기업가형 소상공인“이라며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이런 분들이 성장할 수 있는 트랙들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홍 대표가 이끄는 어반플레이는 2023년부터 ’로컬 파이오니어 스쿨‘(Local Pioneer School)을 운영해오고 있다. 그가 말한 ’비기술 지역 창업가‘를 육성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연남동에 있는 어반플레이 본사 ’연남장‘에서 홍 대표를 만났다. 경의선 철길 아래 자리한 3층짜리 건물 연남장은 원래 유리공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카페 겸 손님맞이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1층 공간의 층고가 2층만큼 높았다. 도시 콘텐츠ㆍ비기술 창업ㆍ로컬파이오니어 스쿨, 알듯 모를듯한 단어들의 뜻과 목적에 대해 홍 대표에게 물었다.

그는 “기술 창업은 이미 많은 지원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비기술 창업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이 분야의 액셀러레이터가 되겠다는 목표로 로컬 파이오니어 스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비기술 창업이란, 공간 기획, 카페ㆍ식음료 브랜드, 관광 서비스, 로컬 문화콘텐츠 등을 말한다. IT나 기술개발 중심이 아닌 지역의 자원과 문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창업이다. 6개월간의 취·창업 교육과 이후 인턴십 등 추가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1년 정도의 프로그램이 된다. 그는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창업 교육을 넘어, 참가자들이 실제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멘토링과 투자 연계까지 지원한다” 며“창업가가 사업자등록만 한다고 창업이 되는 게 아니다. 이들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지역 생태계를 만드는 게 진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로컬 파이오니아 스쿨은 고용노동부가 주관하고 대한상공회의소가 운영하는 공공사업이기도 하다. 홍 대표는 “서울시 골목 창업가 양성 사업과도 연계해, 오프라인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반플레이의 본업은 도시콘텐츠 기획 플랫폼이다. 라이프 스타일 기반의 공간ㆍ콘텐츠를 중심으로 투자와 기획에서 구축ㆍ운영까지 통합으로 수행한다. 적용 가능한 IT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공급하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 문화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게 목표다. 2013년 창업 이후 도시 재생 관련 연구ㆍ컨설팅, 부동산 연구ㆍ컨설팅을 해왔고, 기업 또는 건물주와 공간의 변화를 위한 기획과 설계ㆍ시공까지 해왔다. 이 외에도 지역축제 등을 위한 공간 기획ㆍ운영, 전시ㆍ공연ㆍ강연 등의 기획과 운영도 하고 있다. '서촌브랜드위크(2024~2025)', 연희연남 로컬 페스티벌 '연희걷다(2015~)', '성심당 60주년 기념 전시(2016)', '서울식물원 개방 기념-누군가의 식물원(2018~2019) 등이 그동안 해온 일 중 일부다.

홍 대표는 한양대 건축학과 학부를 졸업했다. 졸업생들은 주로 건설사나 설계사무소 등으로 가지만, 홍 대표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으로 가서 ’도시문화‘를 연구했다. 그는 “원래 기획자로서의 DNA가 있었던 것 같다”며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이 바뀌는 시점에서 학부에서 배운 설계가 아닌, 건축과 다양한 공간을 기반으로 한 도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석사 졸업논문으로 서울 북촌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소비 행태 차이에 대해 연구를 했다. 석사를 마친 후 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 연구보다는 배운 걸 활용해보고 싶어서였다.
’도시 콘텐츠 전문기업‘이란 신종 비즈니스 모델이 소위 ’돈이 될까‘ 싶었지만, 어반플레이의 규모는 작지 않았다. 직원 수 70명, 지난해 매출 180억원, 올해는 연말까지 200억원이 전망된다. 스타트업을 자처하는 만큼 투자유치도 만만치 않다. 2023년 76억원 규모 시리즈 B까지 총 18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네이버ㆍ롯데쇼핑 등 대기업과 벤처캐피탈들이 함께 했다. 100억 정도의 시리즈C 투자유치를 한 다음 2027년쯤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 대표는 “로컬이라는 말이 낭만으로 소비되면 금세 사라지지만 지역 안에서 창업이 반복되고, 콘텐츠가 상품화되고, 그 안에서 일자리가 생긴다면 진짜 산업이 된다”며 “지역주민이 함께 투자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준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