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박윤수 디자이너와 함께했다. [사진 줄라이 칼럼]
K팝, K무비, K드라마, K푸드…. 한국의 다양한 분야가 K라는 머리글자를 이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K패션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현대 의상의 뿌리가 서양이고 보니 아직도 K패션은 글로벌 니즈와 우리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프라다·구찌·발렌티노·보테가베네타·생로랑 등 전통적인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된 온라인 쇼핑 플랫폼 ‘모다 오페란디’에 국내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줄라이 칼럼(JULYCOLUMN)’이 입점했다는 소식이다.
모다 오페란디의 핵심 사업은 ‘트렁크 쇼(trunk show)’다. 패션위크 런웨이가 끝난 직후 온라인에서 룩을 확인 후 구매를 확정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는 판매가의 50%를 선결제하고, 약 6개월 후 의상이 제작되면 잔금을 결제하고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주문 수량만큼 제품이 제작되는 시스템이라 기업은 재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만만치 않은 가격의 절반을 미리 결제하는 시스템이라 소비자도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모르면 이용할 수 없는 플랫폼이다. 이렇게 분명하고 깐깐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해당 바이어들은 브랜드를 1~2년간 유심히 지켜본 후 입점시킨다.
여성복 브랜드 ‘줄라이 칼럼’은 2021년 박소영·소정 자매가 론칭했다. 브랜드 명은 7월을 뜻하는 ‘줄라이’와 ‘칼럼’을 합친 거다. 전자는 자매가 둘 다 7월에 태어났기 때문이고, 후자는 다양한 장르의 칼럼 같은 다채로운 컬렉션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의미다. ‘칼럼’의 기둥이란 뜻도 내포됐다. 한국 패션을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이 되고 싶다는 포부다. 2021 FW 서울패션위크에서 데뷔했고, 2025 SS 밀라노 패션위크에선 이탈리아 국립 패션협회 파트너십 전시 브랜드로 선정돼 컬렉션을 선보였다.
아버지 박윤수 디자이너와 함께했다. [사진 줄라이 칼럼]
지난달 30일 만난 박소영 디자이너는 ‘줄라이 칼럼’의 주요 컨셉트가 ‘제로 웨이스트’와 ‘한국의 미’ 두 가지라고 소개했다. 두 자매의 부모는 ‘빅팍(BIG PARK)’을 운영하는 한국의 1세대 패션 디자이너 박윤수·김미경이다. ‘줄라이 칼럼’ 의상들 중 상당 부분이 부모가 수십 년 동안 옷을 만들면서 사고 남은 창고 속 재고 천들로 제작된다.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줄라이 칼럼’을 즐겨입는 이유기도 하다.
이 컨셉트의 장점은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게 우선이지만 또 다른 매력도 있다. 구매 시점이 오래되긴 했지만 당시 가장 좋다는 천들을 구매했으니 그 품질은 수준급 이상이다. 남은 천을 이용하니까 제작할 수 있는 옷은 겨우 몇 벌 뿐이다. ‘최상의 품질을 가진, 개념 있는 한정판 옷’이라는 얘기가 된다.
‘한국의 미’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한다. “12살 때 영국으로 유학 가서 16년을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됐죠. 영국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에 있는 벤치 하나 가지고도 서너 시간씩 대화를 할 만큼 ‘내 주변의 것의 서사’와 ‘그에 대한 나의 관점’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나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러웠죠.”
많은 국내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한국의 미를 표현하기 위해 전통 문화와 유물에서 출발하지만 ‘줄라이 칼럼’은 접근법이 조금 다르다. “어떤 특정한 것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내가 직접 재현해서 표현하는 게 기존의 접근법이라면 저는 오리지널리티를 이루는 기술력과 가치를 상용화하는 데 더 의미를 두고 있어요.”
한옥의 기와 지붕과 처마 곡선을 독창적인 칼라 실루엣으로 변주하는 ‘줄라이 칼럼’ 의상. [사진 줄라이 칼럼]
예를 들어 ‘줄라이 칼럼’의 대표 시그니처는 ‘한옥의 기와 지붕과 처마 곡선’을 연상시키는 칼라(라펠)다. 박 디자이너는 “옷은 건축이고 옷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기둥(칼럼)은 칼라”라며 “우리만의 독창성으로 이 부분을 변주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석주선 박물관 등을 찾아가 한복 유물을 실견하고 복원 과정을 지켜봤어요. 그리고 한국의 전통 바느질 기법인 누빔을 이용하면 어떨까 생각해냈고, 유선희 누비장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죠.” 박 디자이너가 누빔 바느질법을 사사하진 않았다. 유 장인이 누빔 바느질로 입체감 있는 독특한 모양의 칼라를 제안했고, 박 디자이너는 그걸 브랜드 기술로 상용화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했다. “제 역할은 브릿지(다리)에요. 유 장인의 기술을 배워 공예기법 그대로 재현하는 게 주 목적이 아니라, ‘한국에는 이런 상징적인 오리지널이 있고 그 손맛과 가치는 이런 거야’라고 글로벌에 전달할 수 있는 우리만의 방법을 고민하는 역할이죠. 물론 그 과정은 비용이나 기술 면에서 효율적이어야 겠죠.”
한옥의 기와 지붕과 처마 곡선을 독창적인 칼라 실루엣으로 변주하는 ‘줄라이 칼럼’ 의상. [사진 줄라이 칼럼]
이렇게 만든 칼라는 단순히 기와 지붕과 처마 곡선의 실루엣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옷을 입은 이가 칼라를 이리저리 접어 브로치로 고정하면 전혀 다른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 수 있다. “한국의 미를 기반으로 하지만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이 옷을 사는 이유는 K패션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나만의 실루엣을 만들 수 있는 독창적인 디자인이 흥미롭고 가격도 적당한데, 알고 보니 여기에는 한국의 이런 스토리가 있더라’ 이런 과정을 즐기는 거죠.” 이는 ‘줄라이 칼럼’이 지향하는 바이자 글로벌에서 K패션이 확산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서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