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을 자는 동안 꿈속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질, 발차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순한 잠버릇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이런 증상은 ‘렘수면행동장애’의 대표적인 신호로, 파킨슨병이나 치매의 강력한 전조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관련 질환으로 진행하지 않더라도 렘수면행동장애를 앓는 환자는 인지기능이 점차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인영ㆍ홍정경 교수팀은 특발성(원인 미상) 렘수면행동장애 환자 162명을 평균 7.7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진단되지 않은 경우에도 기억력과 집중력 등 인지기능이 점진적으로 감소했다고 26일 밝혔다.
렘수면행동장애는 잠자는 동안 근육이 이완돼야 하는 렘수면 단계에서 그 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꿈속 행동을 실제로 옮기는 질환이다. 수면 중 소리를 지르거나 팔ㆍ다리를 휘두르고 몸부림치는 등의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본인보다 가족이나 배우자가 먼저 이상을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최소 5년 이상 렘수면행동장애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진행하지 않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총 318회의 신경심리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주의력과 작업기억력, 기억력 영역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진적이면서도 일관된 저하가 확인됐다.
특히 숫자와 기호를 빠르게 연결하는 검사에서는 매년 인지 점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 검사는 생각하는 속도와 집중력, 작업기억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검사다. 연구팀은 초기 인지 변화에 가장 민감한 지표라고 설명했다. 기억력 검사에서도 언어 기억력과 시각적 기억력이 해마다 꾸준히 떨어지는 양상이 관찰됐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장기간 누적될 경우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 진행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실제로 10년 이상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진행하지 않은 ‘장기 안정군’ 환자에서도 전체 환자군과 비슷하거나 일부 검사에서는 더 가파른 인지기능 저하가 나타났다.
성별 차이도 확인됐다. 남성 환자는 주의력, 기억력, 실행기능 등 여러 인지 영역에서 전반적인 저하를 보인 반면 여성 환자는 일부 검사에서만 제한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성별에 따라 뇌 손상에 대한 회복력이나 질병 진행 양상이 다를 가능성이 있다며 맞춤형 관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윤인영 교수는 “여성 환자들이 뇌 손상에 대한 회복력이 더 높거나 질병을 일으키는 비정상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속도가 더 느릴 가능성이 있다”며 “성별에 따라 다른 모니터링 전략과 맞춤형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정경 교수는 “렘수면행동장애가 반드시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뇌 기능의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가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에서 확인됐다”며 “잠버릇 문제로 넘기지 말고 증상이 있다면 정기적인 인지기능 검사와 진료를 통해 추적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수면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SLEEP’에 게재됐다.
이에스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