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車대車⑧ 새해 특집/ 중국차 어디까지 왔나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 1~2위는 중국 업체다. 으뜸은 BYD, 버금은 지리자동차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의 순위와 오롯이 겹친다. BYD는 지난해 국내 승용차 시장에 진출해 6107대를 팔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지리자동차 산하 지커는 올 상반기 한국 땅을 밟을 예정이다. 비슷한 연배의 두 창업자 중심으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소개한다. 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ceo@roadtest.kr)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 지난해 중국이 일본에서 빼앗은 타이틀이다. 카뉴스차이나닷컴(CarNewsChina.com)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자동차 업체 가운데 글로벌 판매 1위는 BYD다. 총 460만2436대를 판매했다. 당초 목표로 삼은 550만대엔 다소 못 미쳤다. 2위는 302만4567대의 지리자동차(吉利汽車). 연간 목표 300만 대를 초과 달성했다.
BYD는 현재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사이기도 하다. 2022년 전체 차량 판매 대수로 테슬라를 앞질렀다. 지난해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이후 PHEV)를 포함한 친환경차 판매로 테슬라를 추월해 쐐기를 박았다. 연간 2000만대 규모의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1등= 세계 1등’을 실적으로 입증했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2위 역시 지리자동차였다.
BYD는 지난해 1월 아토3를 앞세워 국내 승용차 시장에 진출했다. 8월 중형 전기 세단 씰(SEAL)도 투입했지만 초반 실적은 주춤했다. 그러나 9월 2026년형 중형 SUV 씨라이언7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해 첫 달에만 825대를 팔며 분위기 반전을 이끌었다. 그 결과 BYD는 한국 진출 첫해 6107대를 판매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을 듣는다.

지리자동차는 올 상반기 지커(Zeekr) 브랜드로 국내에 공식 진출한다. 지난해 3월 한국법인을 설립했고, 12월엔 4개 딜러사도 선정했다. 지커는 2021년 지리자동차와 지주회사 저장지리홀딩그룹이 합작 설립한 전기차 회사. 저장지리홀딩그룹이 소유한 볼보 및 폴스타와 플랫폼, 파워트레인 등을 공유한다. 첨병으로 앞세울 차종은 중형 SUV 7X가 유력하다.
두 회사 창업자는 공통점이 많다. 물려받은 부 없이 스스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BYD의 왕촨푸(王傳福)는 1966년생(60세), 지리자동차의 리슈푸(李书福)는 1963년생(63세)으로, 중국 개혁개방 시기 사회로 진출했다. 둘 다 다른 업종으로 시작해 인수합병으로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 정부 지분 없는 민영 기업이란 점 또한 닮은꼴이다.
리슈푸, 길거리 사진사에서 자동차 거물로
지리자동차 창업자 리슈푸는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시(台州市) 외곽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82년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에게 120위안을 빌려 국영 사진관에서 쓰는 갈매기 브랜드 카메라를 한 대 샀다. 이후 자전거를 타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호객 행위로 영업해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당시 중국에선 흔치 않던 ‘찾아가는 사진관’이었다.
성실하고 수완 좋은 그는 1년 만에 2000위안을 모았다. 당시 사무직 연봉 4~5배의 액수였다. 덕분에 그는 번듯한 사진관을 열었다. 그런데 우연히 필름 현상액에 은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등학교 화학 교과서의 지식을 활용해 제련에 성공했다. 리슈푸는 사진관을 닫고 수익성 훨씬 좋은 금은 제련에 몰두했다. 고향에서 유일한 제련 기술자였다.

이후 리슈푸는 수제화 공장에 들렀다가 “냉장고 부품 사업이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곧장 가내 수공업 형태로 냉장고 증발기 제조에 나섰다. 급기야 친척 4명과 냉장고 부품 공장을 세웠다. 1986년 공장 매출액이 4000만~5000만 위안에 달했다. 1988년엔 냉장고 공장을 세워 갑부 반열에 올랐다. 불과 26세의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했다.
1989년 중국 정부가 지정 업체만 냉장고 제조를 허가했다. 그는 사업 접고 선전으로 옮겨 학업에 매진했다. 하루는 숙소를 꾸미기 위해 자재 시장에 들렀다가 수입품 폭리가 심하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 그는 다시 친척과 함께 자본금 2000만 위안으로, 오늘날 지리 그룹의 지주 산업인 인테리어 자재 제조에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1993년 리슈푸는 직원과 신사업을 구상하던 중 “국산 품질이 형편없어 오토바이 사업이 유망하다”는 정보를 얻는다. 그는 제조허가증 가진 국유 기업 우정오토바이 공장을 인수했다. 이후 5년 만에 연간 65만 대 생산해 22개국에 파는 규모로 키웠다. 리슈푸 사업 스타일의 핵심은 승부사 기질. 우연히 접한 기회도 과감한 투자와 실행으로 반드시 거머쥐었다.
왕촨푸, 전기차 왕국 세운 배터리 달인
BYD 창업자 왕촨푸는 안후이성(安徽省) 우웨이현(无为县) 평범한 가정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그가 13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생활고 때문에 누나 다섯 명은 일찍이 출가했고, 형도 학교를 그만두고 돈벌이에 나섰다. 왕촨푸가 중학교 졸업을 하기 직전 어머니마저 숨을 거뒀다. 왕촨푸 역시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형과 형수가 “흔들리지 말고 공부하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마치고, 1983년 17세의 나이로 둥난대학(中南大学) 야금물리학과에 들어갔다. 1987년 대학 졸업 후 베이징유식금속연구소 본원에서 석사 과정 밟으며 배터리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뛰어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 결과 불과 26세 때 연구원 부주임으로 승진했다.

1993년 베이징유식금속연구소가 선전에 설립한 배터리 회사의 총경리로 부임했다. 배터리 개발과 생산, 제조 등 전반의 실무 익힐 기회였다. 당시 배터리 산업의 절대 강자는 일본 업체. 선전의 많은 업체가 모조품 제조에 필요한 기술력 쌓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일본 업체들이 돌연 니켈카드뮴 배터리 생산 줄일 조짐을 보였다. 환경오염 때문이었다.
하지만 휴대전화와 전자기기 산업은 나날이 성장 중이던 상황. 왕촨푸는 공급 대란을 예상했다. 회사에 니켈카드뮴 배터리 투자를 제안했다. 하지만 국영 기업 특성상 결정이 늦었다. 결국 1995년 그는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사촌형에게 빌린 250만 위안으로, 선전 경제특구에 직원 20명 규모의 배터리 회사를 차렸다. 바로 비야디실업(比亚迪实业)이었다.
왕촨푸는 후발주자로서 실용적 해법을 꾀했다. 당시 많은 중국 업체처럼 해외 기술과 자동 설비를 대량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대신 반자동 설비와 저렴한 인건비의 인력을 짝지었다. 덕분에 100만 위안으로 배터리 생산 설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일본 제품보다 40% 낮은 원가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노동집약적 생산 방식은 이후 자동차 산업으로 이어졌다.
볼보 인수로 안전과 디자인 수혈한 지리
리슈푸와 왕촨푸 모두 기존 업체를 인수해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다. 중국에서는 국영 기업이 아니면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들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1997년 리슈푸는 쓰촨성의 기존 자동차 공장 지분을 단계적으로 인수해 버스를 시작으로 제조에 나섰다. 부족한 투자금은 투자자들이 생산 분공장의 사장으로 참여하는 일명 ‘보스 프로젝트’로 해결했다.
1998년 8월 8일, 리슈푸는 첫차 지리 SRV를 출시했다. 치열한 경쟁 뚫기 위해 지리가 선택한 무기는 가격 경쟁력. 때문에 수익이 나지 않아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했다. 다행히 판매가 늘어 규모의 경제를 이뤘다. 리슈푸는 일찍이 지리그룹의 국제화를 꿈꿨다. 2010년 볼보자동차를 시작으로, 런던 택시 인터내셔널, 2017년 말레이시아의 프로톤을 인수했다.

특히 리슈푸는 볼보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온갖 수모에 개의치 않고 10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 과정은 어려웠지만 결실은 뿌듯했다. ‘시골 청년과 유럽 공주의 결혼’으로 회자하며 전 세계에 지리를 알린 특이점이었다. 또한, 지리자동차의 전반적 상품성을 비약적으로 높인 계기였다. 볼보의 안전성 노하우와 북유럽 특유의 디자인 및 감성을 수혈한 덕분이었다.
왕촨푸도 2003년 시안친촨자동차회사(西安秦川汽车)의 지분 77%를 인수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도산 위기에 처한 국영 기업이었다. 그런데 신차 개발 경험이 없었다. 왕촨푸는 토요타 코롤라 디자인을 참고해 윤곽을 짜 놓고, 내용 채워 넣는 역설계로 한계를 극복했다. 2005년 9월, 비야디의 첫차 F3가 탄생했다. 비야디의 핵심 전략도 ‘가성비’였다.
비야디는 내연기관 자동차 F3가 크게 성공하면서 주력 분야인 배터리를 접목한 전기차 개발에 주력했다. 비야디의 특이점은 2008년 찾아왔다. 세계 최초의 양산 PHEV인 F3DM 출시,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10% 지분 투자로 존재감이 수직상승했다. 이후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 고도화 및 수직계열화로 전기차 왕국을 완성했다.
BYD, 가성비 앞세워 전기차 수직계열화
BYD와 지리자동차의 서로 다른 개성은 최신 시설에 묻어난다. BYD를 간추릴 특징은 압도적 성능과 기술 내재화. 지난 11월 13일, 취재로 찾은 BYD 정저우 전지형 서킷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의 공항경제실험구에 자리한 종합 테스트 시설로, 신차 개발 및 고객 체험을 아우른다. 총면적 21만4993㎡로, 축구장 22개를 합친 규모다.

9개의 커브와 550m의 직선로 갖춘 1758m 길이의 서킷과 모의 빙판길, 난이도에 따라 총 27가지의 오프로드 시나리오를 재현한 오프로드 코스, 중국 최초로 직경 44m의 원형 트랙을 깊이 3㎜의 수막으로 덮은 저마찰 서클 등을 갖췄다. 내몽골 지역에서 공수한 2600t의 모래로 만든 높이 29.6m, 경사 28도의 모래 경사로 구역은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심지어 수상 부유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BYD의 프리미엄 브랜드 양왕의 U8 전용으로, 길이 70m, 너비 15m, 깊이 1.8m의 테스트 수조다. 실제로 이날 BYD는 취재진을 U8에 태운 뒤 물에 뜬 채 전후진과 방향 전환을 시연해 높은 관심을 모았다. 지프와 랜드로버 등 기존의 원조를 표방한 SUV 제조사도 시도하지 않은 획기적 아이디어였다.

한편, 지리자동차는 볼보의 DNA를 계승해 안전에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연구 개발에 2500억 위안(약 52조원)을 투자했다. 가장 인상적인 가시적 성과는 지난 12월 12일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 문을 연 세계 최대의 안전센터다. 20억 위안을 투자해 완성한 4만5000㎡ 규모의 시설이다.
규모(하드웨어)뿐 아니라 프로그램(소프트웨어)도 최고 수준이다. 예컨대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 안전 실험실 중 가장 많은 27가지 테스트를 소화한다. 또한, 길이 293.39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실내 충돌 테스트 트랙, 영하 20도와 해발고도 5200m, 시속 200㎞의 풍속을 모의한 세계 최대 규모 풍동 실험실 등 5개 부문이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김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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