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균형 약해지면 치매·낙상 위험
대화 어려워져 활동 줄면 우울감도
약물·수술·기기 등 맞춤 치료해야

한쪽 귀에 돌발성 난청이 생긴 여성 김모(66)씨는 수년간 그 귀로 거의 듣지 못했다. 청력을 잃은 쪽에서는 이명까지 심해 밤잠을 설쳤다. 반대쪽 귀가 들린다는 이유로 버텼지만, 평생 한쪽 청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불안 때문에 인공와우 수술을 택했다. 수술 후 말소리를 다시 듣기 시작했고 이명은 사라졌다. 주치의인 박시내(대한이과학회 회장) 서울성모병원 이명·난청·어지럼센터장은 “외부 장치를 빼고 잠자리에 들어도 이명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좋아졌다”며 “청각 자극이 다시 들어오면서 뇌의 이명 회로가 안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나이가 들면 잘 안 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당연하며 치료해도 소용없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난청 가운데는 원인과 치료 시점에 따라 약물이나 수술로 청력이 호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복하기 어려운 청력 손상은 보청기·인공와우와 청각재활로 듣는 기능을 보완한다. 박 센터장은 “100세 시대에 귀 건강을 돌보는 것은 가족과 대화하고 경제·사회 활동을 이어가며 일상을 스스로 꾸리는 힘, 곧 노년의 존엄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갑자기 안 들리면 즉시 진료
청력 저하의 여파는 일상 전반으로 번진다. 대화가 어려워지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고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 인지 저하가 뒤따른다. 세계적인 의학 저널 란셋의 치매위원회는 난청을 치매와 관련해 ‘교정 가능한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귀는 듣기와 균형을 함께 담당한다. 내이(內耳)에는 소리를 감지하는 달팽이관과 머리의 움직임·위치를 감지하는 전정기관이 나란히 자리한다. 내이의 염증이나 혈류 이상, 노화는 두 기능에 함께 영향을 미친다. 전정 기능이 약해지면 어지럼과 낙상 위험이 커지고 혼자 걷거나 외출하기 어려워진다.수 시간에서 수일 사이 뚜렷한 원인 없이 한쪽 청력이 갑자기 떨어지고 귀 먹먹함이나 이명이 동반되면 돌발성 난청을 의심한다. 피로나 귀지 탓이라며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 이비인후과에서 청력검사를 받아야 한다. 스테로이드 복용이나 고막 안쪽에 약물을 넣는 고실 내 주사 치료를 일찍 시작할수록 청력 회복에 유리하다. 특정 저음만 갑자기 들리지 않는 저음역 감각신경성 난청도 조기 치료가 예후를 좌우한다. 만성 중이염으로 고막·이소골이 손상됐거나 이소골이 굳는 이경화증처럼 소리 전달 경로에 구조적 문제가 생긴 전음성 난청은 수술로 청력 개선을 기대한다.청력은 오랜 소음 노출이나 약물의 영향으로 서서히 나빠지기도 한다. 남성 노인에게는 젊은 시절 군 사격 훈련과 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된 소음이 난청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부 항생제와 항암제 등은 달팽이관의 청각세포를 손상하는 ‘이독성’을 지닌다.
속삭임 안 들리면 보청기를
영구적인 감각신경성 난청이 경도·중등도면 남아 있는 청력에 맞춰 보청기를 조절한다. 박 센터장은 “경도 난청(25~40dB)만 돼도 치매 위험을 두 배 높인다”며 “속삭이는 게 안 들리는 정도의 난청(40~60dB)이면 고민 말고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청기의 효과는 지속적인 관리에 달렸다. 청력 변화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주파수별 출력을 조절해야 말소리를 더 정확히 듣는다.보청기를 사용해도 말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운 고도·심도 난청에는 인공와우를 고려한다. 인공와우는 손상된 달팽이관을 대신해 청신경에 전기 신호를 전달한다. 박 센터장은 “84세에 양쪽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있었다”며 “얼마를 더 살든 두 귀로 제대로 듣는 삶을 경험하고 싶다고 했고, 치료 후 표정과 활력이 되살아났다”고 전했다.기기 착용이나 수술 뒤에는 청각재활이 이어진다. 오랫동안 소리를 충분히 듣지 못한 뇌가 새로 들어온 소리를 말소리로 해석하는 훈련이다. 박 센터장은 “안 들린다고 포기하거나 임의로 보청기부터 선택하지 말고 먼저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약물·수술·기기·재활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제때 시작해야 평생의 소통과 삶의 질을 지킨다”고 말했다.
삐 소리·어지럼증 … 뇌 재활 훈련으로 다스려
이명재훈련·전정재활 치료 현장
“삐 소리가 납니다.” “매미 우는 소리 같아요.” “기계가 계속 돌아가요.” 지난달 31일 서울성모병원 이명재훈련치료(TRT)에서 환자들이 각자 듣는 소리를 표현했다. 이명 기간은 3개월부터 10년 이상까지 다양했다. 두 시간밖에 못 자 고통스럽다는 환자도 있었다.전민채(이비인후과) 교수는 여러 모습으로 해석되는 그림을 보여줬다. 설명을 듣자 사람으로 보였던 형상이 전혀 다르게 읽혔다. 같은 감각도 뇌가 어디에 주의를 두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 교수는 “이명을 위험한 신호로 여기고 반복해 확인하면 소리가 더욱 선명해지고 불안도 커진다”고 말했다.이명은 바깥에서 실제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귀나 청각신경에서 생긴 신호를 뇌가 소리로 받아들이는 증상이다. 난청이 흔한 원인인데 청력이 정상이어도 생긴다. 업무 스트레스와 상사의 질책, 수면 부족 뒤 이명이 시작됐다는 환자도 있다. 스트레스와 불안은 뇌의 소리 필터를 약하게 하고 이명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게 한다.재훈련 치료의 목표는 이명을 뇌가 중요하지 않은 소리로 분류하도록 돕는 데 있다. 약 50분의 치료가 끝나갈 무렵, 환자들은 스마트폰 앱으로 백색소음·자연음 등을 이명이 희미하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맞췄다. 이명이 한결 부드러워지거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수준을 찾았다. 전 교수는 “이명이 남아 있어도 느끼는 빈도와 괴로움이 줄어드는 습관화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전정재활치료(VRT)에서는 환자들이 양손 엄지를 눈앞에 펼친 채 시선을 좌우로 빠르게 옮겼다. 그다음엔 한 지점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좌우와 위아래로 움직였다. 시선이 흐트러지거나 고개가 잘못 따라가자 의료진이 곁으로 다가가 속도와 자세를 바로잡았다.두 발을 모으고 눈을 감는 동작, 한쪽 발로 서는 동작이 이어졌다. 걸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방향을 바꾸자 몇몇 환자의 몸이 흔들렸다. 한 환자는 “어지럼은 80% 정도 좋아졌지만, 인사를 하거나 몸을 숙일 때는 아직 불안하다”고 말했다.몸의 균형은 귀의 전정기관과 눈, 근육·관절에서 들어오는 고유수용감각을 뇌가 종합해 조절한다. 임지형(이비인후과) 교수는 “한쪽 또는 양쪽 전정 기능이 떨어져도 나머지 감각기관과 뇌가 부족한 기능을 대신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전정보상”이라고 설명했다.재활에서는 가벼운 어지럼을 일으키는 동작을 반복하며 난도를 높인다. 단단한 바닥에서 푹신한 매트로, 눈을 뜬 상태에서 감은 상태로 옮겨간다. 병원에서 운동법을 배운 환자는 집에서 매일 반복하고 수행표를 작성한 뒤 외래에서 점검받는다. 이미 잘되는 동작은 줄이고 어려운 동작을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임 교수는 “어지럽다고 계속 누워만 있으면 뇌가 새로운 균형 정보를 학습할 기회가 줄어 회복이 늦어진다”고 강조했다.